원나라 황제 순서

원나라 황제 순서

원나라 황제 순서와 계보

원나라(元, 1271~1368)는 몽골 제국의 칸 쿠빌라이가 1271년 국호를 원(元)으로 개칭하며 건국한 왕조입니다. 1279년 남송을 멸망시켜 중국 전역을 통일하였으며, 중국 역사상 한족이 아닌 민족이 중원 전체를 지배한 최초의 왕조로 기록됩니다. 수도 대도(大都, 현재의 베이징)는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 중 하나였으며, 마르코 폴로의 방문으로 유럽에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원나라는 쿠빌라이 사후 급격한 황위 쟁탈전으로 혼란에 빠졌습니다. 건국(1271)부터 멸망(1368)까지 97년간 11명(일부 계산에 따라 15명)의 황제가 즉위하였으며, 후반기 황제 교체는 매우 잦았습니다. 아래 계보도에서 각 황제 카드를 클릭하면 재위 기간·업적·주요 사건 등 상세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역대 황제 상세 정보

1대 세조 지원제 (쿠빌라이) — 1271년 즉위

세조(世祖, 1215~1294, 재위 1271~1294)는 몽골 제국 창건자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툴루이(拖雷)의 넷째 아들로, 1271년 국호를 원(元)으로 개칭하여 중원 왕조를 선포한 원나라 건국 황제이다. 묘호 세조(世祖), 연호 지원(至元).

1279년 남송(南宋)을 완전히 멸망시켜 중국 전역을 통일하였다. 수도를 대도(大都, 현재의 베이징)로 정하고 대운하 확장, 역참제(驛站制) 정비, 지폐(교초, 交鈔) 사용 확대 등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17년간 원나라에 체류하며 쿠빌라이를 섬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여행기 《동방견문록》은 유럽에 동방의 풍요로움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두 차례의 일본 원정(1274년 문영의 역, 1281년 홍안의 역)과 베트남·자바 원정이 모두 실패하였다. 이는 원나라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었으며, 고려에 대해서는 혼인동맹(부마국 체제)을 통해 간접 지배하였다.

2대 성종 원정제 (테무르) — 1294년 즉위

성종(成宗, 1265~1307, 재위 1294~1307)은 쿠빌라이의 손자이자 태자 진김(眞金)의 셋째 아들로, 원나라 제2대 황제이다. 연호 원정(元貞)·대덕(大德). 묘호 성종(成宗).

전임 쿠빌라이의 정복 전쟁 노선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내치(內治)에 집중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주변 칸국들과 평화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과중한 원정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줄이는 데 노력하였다.

고려에 대한 간섭 정책을 유지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우호 관계를 이어갔다. 티베트 불교(라마교)를 장려하는 정책도 계속하였다.

재위 말기 건강이 악화되어 국정을 황후 부루간(卜魯罕)에게 위임하였다. 후사 없이 1307년 붕어하였으며, 조카 카이샨과 아유르바르와다 형제 사이의 계승 경쟁이 발생하였다.

3대 무종 지대제 (카이샨) — 1307년 즉위

무종(武宗, 1281~1311, 재위 1307~1311)은 진김의 차남 다르마발라(答剌麻八剌)의 장남으로, 북방 군사 원정의 공로를 인정받아 황위를 계승한 원나라 제3대 황제이다. 연호 지대(至大). 묘호 무종(武宗).

즉위 시 동생 아유르바르와다(훗날의 인종)와 계승 협약을 맺었다. 자신 후에는 동생에게, 이후 동생 아들에게 황위가 돌아가도록 합의하였으나 이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지폐(至大銀鈔)를 새롭게 발행하고 화폐 제도를 개편하였으나, 화폐 남발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다. 불교 장려로 사원 건설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붓기도 하였다.

재위 4년 만에 31세의 나이로 붕어하였다. 아들 코샤(和世㻋)와 투그테무르(圖帖睦爾)는 훗날 각각 명종과 문종이 되었으나, 그들의 계승 과정은 음모와 의혹으로 점철되었다.

4대 인종 황경제 (아유르바르와다) — 1311년 즉위

인종(仁宗, 1285~1320, 재위 1311~1320)은 다르마발라의 차남이자 무종 카이샨의 동생으로, 원나라 황제 중 가장 적극적으로 한화(漢化) 정책을 추진한 황제이다. 연호 황경(皇慶)·연우(延祐). 묘호 인종(仁宗).

1313년 과거제(科擧制)를 부활시켜 한족 지식인들이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는 원나라 최대의 문치적 개혁으로 평가받으며, 성리학을 관학으로 채택하고 사서오경 보급을 장려하였다.

형 무종과의 황위 계승 약속에 얽매이지 않고 아들 수디발라(훗날의 영종)를 태자로 삼았다. 이로 인해 무종의 아들들(코샤와 투그테무르)과의 계승 갈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궁정에서 한어(漢語)를 사용하고 유교식 예법을 강조하는 등 진정한 한화 군주를 지향하였다. 그러나 강력한 몽골 귀족 세력의 반발로 개혁은 제한적이었다.

6대 진종 태정제 (예순테무르) — 1323년 즉위

진종(晉宗)/타이딩제(泰定帝, 1293~1328, 재위 1323~1328)는 진김의 장남 감말라(甘麻剌)의 아들로, 쿠빌라이의 증손자이다. 남파쿠의 변으로 영종이 암살된 후 옹립된 원나라 제6대 황제이다. 연호 태정(泰定)·치화(致和).

남파쿠의 변(南坡之變, 1323) 주동 세력의 지지를 받아 즉위하였다. 즉위 후 주동자들을 처형하여 정치적 안정을 꾀하였으나, 권신 세력의 영향력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치세 5년간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고 불교 사원에 대한 과도한 지원을 줄였으며, 한족 관료들을 고루 등용하였다.

1328년 상도(上都)에서 갑자기 붕어하였다. 후계를 둘러싸고 상도 세력(아들 아라기바 지지)과 대도(大都) 세력(투그테무르 지지)이 충돌하는 양도지쟁(兩都之爭)이 발발하여 내전 상태에 빠졌다.

5대 영종 지치제 (수디발라) — 1320년 즉위

영종(英宗, 1303~1323, 재위 1320~1323)은 인종 아유르바르와다의 아들로, 원나라 제5대 황제이다. 유교 개혁을 심화하려다 암살된 비운의 황제이다. 연호 지치(至治). 묘호 영종(英宗).

아버지 인종의 한화 정책을 계승하여 한족 유교 관료들과 함께 법전 정비, 부패 척결, 과도한 불교 지출 삭감 등을 추진하였다.

1323년 남파쿠(南坡, 오늘날 내몽골 근처)에서 야영 중 시종 철실(鐵失) 등이 일으킨 쿠데타(남파쿠의 변)로 암살되었다. 개혁에 반발한 보수적 몽골 귀족 세력의 소행이었다.

영종의 암살은 원나라 유교 개혁의 좌절을 의미하였다. 이후 즉위한 예순테무르(타이딩제)는 쿠데타 주동자들을 처형하였으나, 개혁 기조는 이어지지 못하였다.

9대 명종 천력제 (코샤) — 1329년 즉위

명종(明宗, 1300~1329, 재위 1329)은 무종 카이샨의 장남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소환되어 동생 투그테무르로부터 양위를 받은 원나라 제9대 황제이다. 재위 8개월 만에 의문사하였다.

동생 투그테무르가 1차 즉위 후 형을 정통 황제로 인정하며 양위하였다. 코샤는 중앙아시아에서 귀환하여 즉위하였으나, 투그테무르와의 회합 직후 갑자기 사망하였다.

독살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다. 이후 투그테무르(문종)가 복위하였다는 사실이 의혹을 부추겼으나, 당시 기록이 문종 측에 의해 관리되었기 때문에 진실은 밝혀지기 어렵다.

재위 기간이 너무 짧아 특별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였다. 그의 아들들 이린지발(寧宗)과 토곤테무르(惠宗)가 이후 황제가 되었다.

8대 문종 천력제 (투그테무르) — 1328년 즉위

문종(文宗, 1304~1332, 재위 1328~1329, 1329~1332)은 무종 카이샨의 차남으로, 대도 군벌의 지지를 받아 천순제를 물리치고 즉위한 원나라 제8대(두 차례 재위) 황제이다. 연호 천력(天曆). 묘호 문종(文宗).

1차 재위(1328~1329) 중 형 코샤(명종)가 중앙아시아에서 귀환하자 양위하였다. 그러나 명종은 투그테무르와 만난 직후 갑자기 사망하였으며, 독살 의혹이 제기되었다.

2차 재위(1329~1332)에는 규장각(奎章閣)을 설립하여 서예·회화·문학 등 문화 사업을 크게 장려하였다. 원나라 황제 중 가장 높은 문화적 소양을 지닌 군주로 평가받는다.

사망 전 형 코샤의 아들 토곤테무르를 후계자로 세우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다. 1332년 29세로 붕어하였다.

7대 천순제 (아라기바) — 1328년 즉위

천순제(天順帝, 1320~?, 재위 1328)는 타이딩제 예순테무르의 아들로, 상도(上都) 세력의 지지를 받아 즉위를 선포하였으나 한 달여 만에 몰락한 원나라 제7대 황제이다. 묘호 없음.

부친 예순테무르의 갑작스러운 붕어 직후 상도 세력(테그시 등)이 8세의 아라기바를 황제로 옹립하였다. 이에 맞서 대도(大都)에서는 무종의 아들 투그테무르가 황제를 자칭하였다.

양도지쟁(兩都之爭)에서 대도 측 군대가 빠르게 상도를 공략하였다. 상도 방어군이 무너지면서 아라기바의 지지 세력은 해산되었다.

패배 후 아라기바의 행방은 불명이다. 투그테무르(문종)가 천순제의 연호를 폐지하고 원나라 공식 황제 계보에서 제외시켰으나, 현대 역사학에서는 그를 황제로 인정하는 추세이다.

10대 영종 지순제 (이린지발) — 1332년 즉위

영종(寧宗, 1326~1332, 재위 1332)은 명종 코샤의 아들로, 7세에 즉위하였으나 두 달 만에 사망한 원나라 제10대 황제이다. 연호 지순(至順). 묘호 영종(寧宗).

문종 투그테무르가 후사 없이 붕어하자 권신 연철목아(燕鐵木兒)가 코샤의 어린 아들 이린지발을 황제로 옹립하였다.

즉위 당시 7세로, 실권은 권신 연철목아에게 있었다. 재위 2개월 만에 사망하였으며, 어린 나이를 감안하면 병사 또는 독살로 추정된다.

이린지발의 사망 후 권신 연철목아는 코샤의 또 다른 아들 토곤테무르(妥懽帖睦爾)를 소환하여 황위에 앉혔다. 이가 원나라 마지막 황제 혜종이다.

11대 혜종 지정제 (토곤테무르) — 1333년 즉위

혜종(惠宗)/순제(順帝, 1320~1370, 재위 1333~1368)는 명종 코샤의 아들이자 원나라 최후의 황제이다. 35년의 긴 재위 동안 원나라의 붕괴를 지켜봤으며, 1368년 대도를 버리고 북쪽으로 도주하였다. 연호 지정(至正).

재위 초기 권신 바얀(伯顏)의 극단적 반한(反漢) 정책에 시달렸으나, 1340년 사촌 토그토(脫脫)와 함께 바얀을 축출하고 친정(親政)을 시작하였다. 토그토 주도 아래 역사 편찬, 재정 개혁, 지폐 개혁 등을 추진하였다.

1351년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대규모 반란이 잇따랐다. 주원장(朱元璋), 진우량(陳友諒), 장사성(張士誠) 등이 각지에서 세력을 키웠다.

1368년 주원장이 명(明)나라를 건국하고 군대를 북상시키자 혜종은 대도(大都)를 버리고 북쪽 몽골 초원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북원(北元)을 유지하다가 1370년 카라코룸 근방에서 붕어하였다.

혜종의 북상으로 원나라는 97년의 중원 지배를 공식적으로 마감하였다. 명나라는 그에게 순리에 따랐다는 의미로 순제(順帝)라는 시호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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