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왕 순서

조선왕조 왕 순서

조선왕조 왕 순서와 계보

조선은 1392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 건국되어 1897년까지 약 500년간 이어진 왕조입니다. 총 27대 왕이 재위하였으며, 왕위 세습은 대부분 장자 상속에 의한 것이 원칙이었으나 실제로는 다양한 상황에 따라 왕위 승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래 계보도에서 각 왕을 클릭하면 업적과 주요 사건 등 상세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역대 왕 상세 정보

1대 태조 (이성계) — 1392년 즉위

태조(太祖, 1335년 ~ 1408년, 재위 : 1392년)는 고려 말 무신정치가이며, 조선을 건국한 초대 왕이다.

고려의 장수이며 공민왕때 홍건적과 왜구 토벌에서 영웅적 공로를 쌓아 입지를 다졌다. 이때 철령 이북 영토 문제를 두고 명나라와 갈등이 빚어지자,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우왕은 명나라 요동 정벌을 명한다. 우군도통사로서 요동 정벌을 위하여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정권을 장악하였고, 공양왕에게서 선위 형식으로 개경 수창궁에서 즉위함으로써 조선을 개국하였다.

태조 이성계의 업적중 으뜸은 중앙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하여 지방의 분권력을 통제하는 것이며, 고려시대의 기득권적인 관료들을 배척하고 새로운 관료진을 임명하여 조선의 중앙 집권을 강화하였다. 또한, 군사력을 강화하고 동북아시아와의 관계를 중요시하여 국가의 안보와 국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국제 정세에 있어서 이성계는 몽골의 위협과 침략에 대비하여 강화된 군사력으로 대응하였다. 또한, 조선은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가의 안정과 국제적인 입지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대마도 정벌을 시도하여 조선의 국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대마도는 당시 일본의 군사적 중요성이 높았던 지역으로, 이성계는 1388년에 대마도 정벌 작전을 계획했지만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를 통해 조선은 외국과의 군사적 대결을 준비하고 동북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조선의 국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2대 정종 (이방과) — 1398년 즉위

정종(定宗, 1357년~ 1419년)은 이성계의 둘째 아들로서, 고려 말기의 무신이자 조선의 제2대 임금이다.

태조 6년 동생 정안군이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본래 왕위에 뜻이 없었던 영안군은 왕세자가 되기를 사양하였으나, 태조의 장자 진안대군은 이미 사망하였기 때문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이후 1개월 뒤인 1398년 태조의 양위로 조선 제2대 국왕으로 등극하였다. 정종은 일찍이 태종이 창업 대의에 가장 열정적이었던 것을 인정하여 직접적으로 동생 태종이 왕위에 오를 것을 추천하는 등 왕위에 관한 관심은 없었다.

3대 태종 (이방원) — 1400년 즉위

태조 이성계와 정부인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째 아들이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공을 세웠다. 두차례의 왕자의 난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으며, 동복형 정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조선 3대왕에 즉위하여 기존 공신들을 축출하고, 사병을 혁파하였으며 호패법과 6조 직계제를 실시했다. 왕실의 외척을 숙청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고려 말기에 이방원은 조선을 새롭게 세우려는 사람이였고, 정몽주는 고려를 그대로 두고 개혁하자는 주장이였다. 이방원은 뛰어난 학자이면서 정치가인 정몽주와 함께 새로운 국가를 세워볼 마음으로 ‘하여가’로 마음을 떠 보았고, 정몽주는 ‘단심가’로 자신의 고려에 대한 충정의 마음을 답하게 된다. 결국 정몽주는 죽임을 당하게 되고. 정몽주가 죽은 후에 이 자리에서 대나무가 솟았다고 하여 선죽교라 부르게 되었다.

사병 혁파와 법령 개정, 관제 개정과 신문고 설치, 개국 공신 숙청, 서적 간행등 실질적 조선왕조의 기반을 다졌다.

4대 세종 (이도) — 1418년 즉위

세종(世宗, 1397년 ~ 1450년, 재위 : 1418년)은 조선의 제4대 왕이다. 태종과 원경왕후의 아들이며 형인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되자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세종은 과학, 기술, 예술, 문화,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백성들에게 농사에 관한 책을 펴내었지만 글을 몰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문자 체계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과학 기술에도 두루 관심을 기울여 혼천의, 앙부일구, 자격루, 측우기 등의 발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신분을 뛰어넘어 장영실, 최해산 등의 학자들을 기용하였다.

국방에서는 이종무로 하여금 왜구를 토벌하고 대마도를 정벌하였으며 이징옥, 최윤덕, 김종서 등을 북방으로 보내 평안도와 함길도에 출몰하는 여진족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고 4군 6진을 개척하여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으로 국경을 확장하였고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하는 사민정책을 실시하여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국경선을 이루었다.

5대 문종 (이황) — 1450년 즉위

문종(文宗, 1414년 ~ 1452년, 재위 1450년)은 조선의 제5대 왕이다. 묘호는 문종(文宗)이며, 문치를 발전시키고 다스렸다는 뜻이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맏아들로, 조선의 왕 중에서 적장자로 왕위에 오른 최초의 왕이다.

문종은 6품 이상까지 윤대를 허락하는 등 하급 관리들의 말도 빠짐없이 경청하는 등 열린 정책을 펴는 한편, 동국병감,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편찬하였다. 문종은 역사와 병법을 정리함으로써 사회 기반을 정착시키고 제도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7대 세조 (이유) — 1455년 즉위

단종(端宗, 1441년 ~ 1457년, 재위 1452년)은 조선의 제6대 왕이다. 1455년 숙부 세조의 정변(계유정난)으로 양위하였다가, 세조 측근들의 탄핵으로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로 유배되었다가 유배지에서 운명을 다하였다

왕권 강화를 위해 의정부서사제를 폐지하고 6조 직계제를 부활시켜 국왕이 직접 6조의 업무를 관장하도록 하였다. 집현전을 폐지하고 경연을 축소하는 등 신하들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직전법을 실시하여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토지 제도를 개혁하였다. 경국대전의 편찬을 시작하여 조선의 법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불교를 진흥하여 원각사를 건립하고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불경을 한글로 번역·간행하였다. 특히 월인석보를 편찬하여 불교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의 단종 복위 운동을 진압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충신들이 희생되었다.

6대 단종 (이홍위) — 1452년 즉위

세조(世祖, 1417년 ~ 1468년)는 조선의 제7대 왕이다.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형인 문종 사후에 조카 단종이 즉위하자 단종을 폐위시키고 즉위하였다. 조선에서 최초로 왕세자를 거치지 않고 즉위한 임금이자,정변을 일으켜 즉위한 군주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황보인, 김종서 등 고명대신들의 보좌를 받았으나, 수양대군이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1455년 숙부에게 양위를 강요받아 상왕으로 물러났다.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으나 발각되어 처형되었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1457년 사사(賜死)되어 17세의 나이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였다.

숙종 24년(1698년)에 복위되어 단종이라는 묘호를 받았으며, 영월 장릉에 안장되었다. 단종과 관련된 충신들인 사육신과 생육신은 후대에 절의의 상징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8대 예종 (이광) — 1468년 즉위

예종(睿宗, 1450년 ~ 1469년, 재위 1468년 ~ 1469년)은 조선의 제8대 왕이다.

짧은 재위 기간에도 불구하고 남이 장군의 옥사를 처리하였으며, 세조가 시작한 경국대전의 편찬 작업을 계속 추진하여 완성에 가까이 이르게 하였다.

재위 14개월 만에 20세의 나이로 급서하였으며, 뒤를 이어 조카 성종이 왕위에 올랐다. 예종은 세조의 강력한 왕권을 계승하면서도 훈구 세력과의 조화를 모색한 왕으로 평가된다.

9대 성종 (이혈) — 1469년 즉위

성종(成宗, 1457년 ~ 1495년, 재위 : 1469년 ~ 1494년)은 조선의 제9대 왕이다.

성종은 사림파를 중용하고 원상제를 폐지하며 훈구파를 견제하였다. 억불승유 정책을 추진했고, 왕에게 유학의 경서와 사서를 진강하는 경연을 되살렸다. 1485년에는 초선시대 최고의 법전이자 세조때 시작한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반포하여 조선 유교정치의 틀을 닦는 업적을 세웠다. 성리학적 통치 규범을 지키고 왕도정치를 이루고자 노력하였다.

10대 연산군 (이융) — 1494년 즉위

연산군(燕山君, 1476년 ~ 1506년, 재위 : 1495년 ~ 1506년)은 조선의 제10대 왕이다. 성종의 장자로, 어머니는 폐비 윤씨이다.

군국기무를 관장하는 비융사를 설치토록 하여 병기를 만들게 하고 변경지방으로 주민이주를 장려하였다. 지금의 충청도의 녹도에 침공한 왜구를 격퇴하고 건주야인을 토벌하였다

국가가 생필품을 대여하는 사창, 물가를 관리하는 상평창·진제창등을 설치하여 빈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려 노력하였다.

11대 중종 (이역) — 1506년 즉위

중종(中宗, 1488년 ~ 1544년, 재위: 1506년 ~ 1544년)은 조선의 제11대 왕이다.

반정 공신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기에 초기에는 반정 공신들의 영향력이 컸으나, 조광조 등 사림파를 등용하여 개혁 정치를 시도하였다. 조광조는 현량과를 실시하여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고, 소격서를 폐지하며, 위훈 삭제를 추진하는 등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1519년 기묘사화가 발생하여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가 대거 숙청되었다. 훈구파가 조광조의 급진적 개혁을 위험시하여 중종을 설득, 사림파를 제거한 것이다.

비변사를 설치하여 외적 방어를 위한 군사적 의사결정 기구를 마련하였으며, 삼포왜란(1510년) 등 왜구의 잦은 침입에 대응하였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간행하였다.

의약서인 간이벽온방과 벽온신방을 편찬하여 전염병 대응에 힘썼으며, 국가 의료 체계의 정비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2대 인종 (이호) — 1544년 즉위

인종(仁宗, 1515년 ~ 1545년, 재위 : 1544년 ~ 1545년)은 조선의 제12대 왕이다.

즉위 후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조광조 등 사림파를 신원하고, 현량과 출신 인물들을 복권시키려는 개혁을 추진하였다. 소격서를 다시 폐지하고 유교적 통치 이념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즉위 8개월 만에 31세의 나이로 급서하였다. 계모인 문정왕후와의 갈등이 있었으며, 독살설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인종의 급서로 이복동생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즉위하게 되었다.

13대 명종 (이환) — 1545년 즉위

명종(明宗, 1534년 ~ 1567년, 재위 : 1545년 ~ 1567년)은 조선의 제13대 왕이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 기간(1545~1553년) 동안 을사사화(1545년)가 일어나 윤임 등 대윤 세력이 숙청되고, 외숙 윤원형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윤원형의 전횡으로 정치가 문란해지고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다.

문정왕후가 불교를 크게 후원하여 승려 보우를 등용하고 선교 양종을 부활시키는 등 억불 정책이 일시 완화되었다. 그러나 문정왕후 사후 보우는 유배되어 사망하고 불교 부흥 정책은 중단되었다.

임꺽정의 난(1559~1562년)이 발생하여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일대에서 3년간 관군과 대치하였다. 이는 당시 세도가의 수탈과 탐관오리의 횡포로 인한 민심 이반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다.

명종 후사 없이 승하하여 방계인 하성군(선조)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명종대는 외척 세력의 전횡과 사림의 피해가 극심했던 시기로 평가된다.

14대 선조 (이연) — 1567년 즉위

선조(宣祖, 1552년 ~ 1608년, 재위 : 1567년 ~ 1608년)는 조선의 제14대 국왕이다.

선조는 주자학의 보급을 장려했고, 사림을 중용했으며, 스스로 학문에 힘써 강연에서 이황·이이 등 대유학자들과 경사를 토론했다.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조광조를 비롯한 여러 사림인사들을 신원을 복구하였다.

붕당정치가 성립하였으나 동인과 서인으로 분리되고, 실권을 잡은 동인은 또 다시 북인과 남인으로 분열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난 상황에서도 내부 결속을 이루지 못했다.

1592년에 일본 왜구의 침략으로 발발한 임진왜란이 7년간 이어지며 국토가 황폐화되고 전국이 전쟁터가 되어 개국 이래 200년만에 내외적으로 가장 혼란한 상황을 맞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군은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진격하였고, 선조는 바로 의주까지 퇴각 하게 된다. 퇴각하던 도중 평양에서 세자로 책봉한 광해군으로 하여금 분조를 설치하게 하여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명나라는 그해 12월 4만 5천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퇴각하는 동안 이순신·권율 등이 이끄는 관군과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군이 일본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어 일본군을 격퇴했다.

15대 광해군 (이혼) — 1608년 즉위

광해군(光海君, 1575년 ~ 1641년, 재위: 1608년 ~ 1623년)은 조선의 제15대 왕이다. 임진왜란 때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의병을 이끌고 항전 하였다. 즉위 후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 노선을 취하였으며 전후 복구와 대동법의 실시 등 여러 정책을 실시하였지만, 잦은 옥사와 중립외교,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유폐한 일로 인해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에 의해 폐위되었다.

대동법을 경기도에 시범 실시하여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납부하도록 하였다. 이는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줄이고 토지 면적 기준으로 납부하는 혁신적인 조세 개혁이었다.

임진왜란으로 황폐된 국토를 복구하기 위해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편찬하게 하여 조선의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호적 정비와 양전 사업을 실시하여 전쟁 후 인구 파악과 토지 관리에 힘썼다.

후금과 명나라 사이의 국제 정세에서 실리적인 중립 외교를 펼쳤다. 명나라의 원병 요청에 강홍립을 파견하면서도 후금에 적대적이지 않도록 배려하는 등 사대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실리적 국익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켜 사사하고, 인목대비를 폐위하고 유폐시킨 일은 유교적 도덕에 어긋나는 것으로 비판받아 폐위의 직접적 구실이 되었다.

16대 인조 (이종) — 1623년 즉위

인조(仁祖, 1595년 ~ 1649년, 재위: 1623년 ~ 1649년)는 조선의 제16대 왕이다.

인조반정(서인과 남인의 협력으로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즉위하였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등으로 국토는 황폐화 된다. 병자호란때에는 인조가 직접 눈밖에 쌓인 비탈길을 내려와 수향단에 좌정한 홍타이지 앞에 무릎을 꿇고 삼배구고두례를 행했다. 세 번 절 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땅에 찧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17대 효종 (이호) — 1649년 즉위

효종(孝宗, 1619년 ~ 1659년, 재위: 1649년 ~ 1659년)은 조선의 제17대 왕이다.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서 인질 생활을 하였다. 소현세자의 급사로 인해 세자로 책봉되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론을 주장하며 군사력 강화에 힘썼다. 어영청을 확대하고 군사를 양성하였으며, 대포 등 무기 개발에도 주력하였다.

대동법을 충청도와 전라도로 확대 실시하여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줄였으며,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 경제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네덜란드 상인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하여 조선과 유럽 세계가 처음 접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18대 현종 (이원) — 1659년 즉위

현종(顯宗, 1641년 ~ 1674년, 재위: 1659년 ~ 1674년)은 조선의 제18대 왕이다.

현종은 재위기간중 북벌론을 일단 중단시키고 양란을 겪으면서 흔들렸던 조선의 지배질서의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재정구조의 재건을 위해서는 호구수의 증가와 농업의 발전, 조세징수체계의 확립에 노력했다. 농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각지에 관개시설을 만들어 수리면적을 늘렸고, 이듬해에는 양관을 각 도에 보내 관개시설을 점검하게 했다. 아울러 조세체계의 정비를 위해 1660년 호남의 산군에 대동법을 실시하고, 1663년에는 호남대동청을 설치했으며, 1662년 경기도에 균전사를 임명하여 양전을 실시했다.

1차 예송(기해예송)은 효종이 승하 후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의 복제문제를 두고 서인과 남인은 계모가 아들의 상중에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하는지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우며 충돌하였다. 남인의 3년상과, 서인의 1년상이 대립하였는데,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가 죽었을 때, 자의대비가 장자를 대상으로 하는 3년상의 상복을 입었기 때문에 서인의 1년상이 채택되었다. 서인의 안이 채택되었지만 이때 현종은 서인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2차 예송(갑인예송)은 효종 비 인선왕후가 죽자 자의대비가 며느리의 상중에 상복을 얼마 동안 입을 것인가를 두고 다시 서인과 현종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서인은 기년복(1년 복)으로 정했다가 대공복(9개월 복)으로 수정하였는데, 남인이 대공복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기년복(1년복)을 주장하였다. 이때 현종은 서인의 주장을 논파하며 남인의 기년복을 채택하여 서인 정권이 무너지고 남인이 실권을 장악하였다.

19대 숙종 (이순) — 1674년 즉위

숙종(肅宗, 1661년 ~ 1720년, 재위: 1674년 ~ 1720년)은 조선의 제19대 왕이다.

숙종은 왕권을 강화와 기득권 세력의 견제를 위해 집권 당파를 공격하거나, 한 당파를 이용해 다른 당파를 공격해서 정권을 바꾸는 등의 극단적인 방법을 자주 사용하였다. 이런 행위를 환국이라고 부른다. 1, 2차 예송을 거치면서 당쟁의 골이 깊어진 와중에 환국을 3차례의 환국을 시행하여 많은 사림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숙종은 처음에 외척인 김석주를 끌어들여 송시열의 서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남인 정권을 성립시켰다. 남인은 정권을 잡게 되자 서인들을 완전히 몰아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가진 청남과 서인들에 대한 입장이 비교적 온건한 탁남으로 분열하여 결국 탁남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경신환국때에는 숙종이 지나치게 강해진 남인 세력을 견제하고자 다시 김석주를 시켜 가짜 역모사건을 만들어 많은 남인들을 죽이거나 귀향보내며 서인 정권을 세웠다. 이처럼 지나친 처사는 서인 세력 내에서도 반발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를 통해 노론과 소론이 분립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기사환국은 주도권을 잡은 송시열 등의 서인 정권이 희빈 장씨가 낳은 아이의 원자 책봉 문제로 숙종에 반발하다가 다시 축출되고 다시 남인이 정권애 복귀하는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인현왕후 민씨를 폐위하고 송시열을 사사하였다.

다시 5년 뒤 숙종은 갑술환국을 단행하여 서인 정권을 회복시켰다. 3번의 환국 이후로 숙종은 노론과 소론의 대립을 적절히 이용하여 정국을 이끌어 갔지만 숙종 말년에는 노론으로 세력이 기울었다.

20대 경종 (이윤) — 1720년 즉위

경종(景宗, 1688년 ~ 1724년, 재위: 1720년 ~ 1724년)은 조선의 제20대 왕이다. 숙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희빈 장씨이다.

즉위 이전부터 노론과 소론의 세자 쟁탈에 휘말렸다. 노론은 연잉군(영조)을 세제(왕위를 이을 동생)로 세우려 하였고, 소론은 경종을 지지하여 두 당파 간 경쟁이 치열하였다.

신임사화(1721~1722년)가 발생하여 노론이 세제 책봉을 강요하자 경종이 이를 받아들여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소론 대신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재위 4년 만에 37세로 승하하였으며, 독살설이 제기되었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경종의 사망 이후 영조가 즉위하여 노론의 독주가 시작되었다.

21대 영조 (이금) — 1724년 즉위

영조(英祖, 1694년 ~ 1776년, 재위 : 1724년 ~ 1776년)는 조선의 제21대 왕이다.

탕평책을 능숙하게 활용하여 노론과 소론의 당론을 중재하고 실질적 왕권을 도모 하였지만 결국 실패 하였다. 둘째 아들 사도세자와 갈등을 빗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그리하여 유일하게 영조의 아들대에는 재위한 임금 없이 손자 정조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가혹한 형벌을 폐지 하여 민중들이 인권을 존중받도록 하였고, 신문고 제도를 부활하여 민중들이 일을 직접 듣고자 했다. 금주령을 내려 사치와 낭비의 폐습을 교정하고, 농업을 장려하고 균역법을 실시하는등 민생의 안정에 주력을 두었다.

22대 정조 (이산) — 1776년 즉위

정조(正祖, 1752년 ~ 1800년, 재위: 1776년 ~ 1800년)는 조선 제22대 왕이다

탕평책과 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창설로 왕권 강화를 위한 노력에 치중하였고, ‘홍재전서’를 출간하고 각종 문집과 법전의 재간행등을 장려하였다. 조선의 성곽 건축 기술을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 화성을 축성하였다. 무예와 함께 유학의 각 경전에도 두루 통달하여 경연장에서 신하들을 강의하기도 했다. 영조와 함께 조선 후기의 중흥기를 이루어 낸 대표적인 군주로 평가된다.

23대 순조 (이공) — 1800년 즉위

순조(純祖, 1790년 ~1834년, 재위: 1800년 ~ 1834년 )는 조선의 제23대 왕이다

순조에 이르러 탕평정책이 실패하고 붕당정치가 약화되어, 권력이 특정 외척 가문에 집중되어 국정이 운영되는 정치 형태인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이때 부터 헌종과 철종에 이르기 까지 3대 60여년간 왕의 외척일가에 의해 정치가 좌우되었다.

순조 즉위 초 정순왕후 김씨의 수렴청정이 실시되었고, 이후 안동 김씨가 세도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신유박해(1801년)로 천주교도들이 대거 처형되었으며, 이는 남인 세력 제거와 천주교 탄압이라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홍경래의 난(1811년)이 평안도에서 발생하여 서북 지역의 불만이 폭발하였다. 이는 세도정치에 의한 매관매직·수탈과 지역 차별 등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이 표출된 사건이었다.

25대 철종 (이변) — 1849년 즉위

철종(哲宗, 1831년 ~ 1864년, 재위: 1849년 ~ 1864년)은 조선의 제25대 왕이다.

안동 김씨 세도가에 의해 강화도 농촌에서 옹립되어 재위 기간 전반에 걸쳐 실권은 안동 김씨 세력이 장악하였다. 세도정치의 폐해가 극심해졌다.

세도정치로 인한 매관매직, 삼정(전정·군정·환곡) 문란 등으로 백성들의 삶이 극도로 어려웠다. 임술농민항쟁(1862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진주를 시작으로 37개 관에서 농민봉기가 일어났다.

철종은 34세로 승하하였으며 후사가 없어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철종대는 조선 왕조의 말기적 쇠퇴기였으며, 이후 대원군의 섭정과 개항의 시대로 이어졌다.

24대 헌종 (이환) — 1834년 즉위

헌종(憲宗, 1827년 ~ 1849년, 재위 : 1834년 ~ 1849년)은 조선의 제24대 왕이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권력 쟁탈을 벌여 세도정치가 계속되었다. 헌종 친정 시기에는 안동 김씨를 견제하고자 풍양 조씨를 등용하였으나 세도정치의 틀을 완전히 깨지는 못했다.

천주교 탄압이 지속되었다. 기해박해(1839년)가 발생하여 프랑스 선교사 3명이 순교하였으며, 병오박해(1846년)에서도 천주교도들이 처형되었다.

헌종대에 이양선의 출몰이 시작되었다. 1845년 영국 군함이 서해안에 나타나고, 1846년에는 프랑스 군함이 출몰하는 등 서구 열강의 압력이 시작되었다. 헌종은 23세에 후사 없이 승하하여 철종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26대 고종 (이형) — 1863년 즉위

고종(高宗, 1852년 ~ 1919년, 재위:1864년 ~ 1897년, 재위: 1897년 ~ 1907년)은 조선의 제2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이다.

초기에는 흥선대원군의 섭정을 받았다. 1875년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을 하고 내정개혁 및 개화운동을 전개했으나 실패하자 대한제국을 수립하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등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웠고, 외적으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일어나 일본이 승리함으로서 실질적으로 일본의 영향력 하게 들어가게 된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하고, 서원을 철폐하며, 호포법을 실시하여 양반도 군포를 내게 하는 등 강력한 개혁 정치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당백전 발행으로 인한 물가 상승과 경복궁 중건 비용의 부담은 민생을 어렵게 하였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개혁을 추진하여 근대화를 시도하였다. 양전·지계 사업을 실시하여 근대적 토지 소유체제를 정비하고, 전기, 전화, 철도 등 근대적 기반시설의 도입에도 노력하였다.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일본의 강제 양위에 의해 순종에게 양위하였다. 1919년 고종의 갑작스러운 승하는 독살 의혹과 함께 3·1 만세운동의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다.

27대 순종 (이척) — 1907년 즉위

순종(純宗, 1874년 ~ 1926년, 재위 : 1907년 ~ 1910년)은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이다.

고종이 일본의 강제 양위로 하야하자 즉위하였으나, 실질적 통치권은 일본이 장악하였다.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어 군대 해산과 내정권 이양이 이루어졌다.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며 조선 518년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순종은 이왕으로 강등되었으며, 이후 일본에서 귀족대우를 받으며 생활하였다.

순종은 1926년 53세의 나이로 승하하였으며, 그의 장례식은 6·10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로서,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마지막 군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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