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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조

고려(高麗)왕조는 918년 후삼국의 고구려계인 왕건이 즉위한 이후, 1392년 이성계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474년간 한반도에 존재하던 국가이다. 통일신라 하대에 송악(현재의 개성) 지방의 호족인 왕건이 918년에 건국하여, 919년에 송악을 개경이라 이름을 고치고 수도로 삼았다.

고려왕조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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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태조
2대혜종
3대정종
4대광종
대종
안종
5대경종
6대성종
8대현종
7대목종
9대덕종
10대정종
11대문종
12대순종
13대선종
15대숙종
14대헌종
16대예종
17대인종
18대의종
19대명종
20대신종
22대강종
21대희종
양양공
23대고종
2대
24대원종
3대
25대충렬왕
4대
26대충선왕
정원군
27대충숙왕
34대공양왕
28대충혜왕
31대공민왕
29대충목왕
30대충정왕
32대우왕
33대창왕
혈연 승계

고려왕조 역대 왕 즉위 순서와 즉위 기간

No.
묘호
이름
출생년
즉위년
즉위나이
즉위기간
1대태조왕건877년918년41세25년
2대혜종왕무912년943년31세2년
3대정종왕요923년945년22세4년
4대광종왕소925년949년24세26년
5대경종왕주955년975년20세6년
6대성종왕치960년981년21세16년
7대목종왕송980년1009년17세12년
8대현종왕순992년1009년17세12년
9대덕종왕흠1016년1031년15세3년
10대정종왕형1018년1034년16세12년
11대문종왕휘1019년1046년27세37년
12대순종왕훈1047년1083년36세3개월
13대선종왕운1049년1083년34세11년
14대헌종왕욱1084년1094년19세1년
15대숙종왕옹1054년1095년41세10년
16대예종왕우1079년1105년26세17년
17대인종왕구1109년1122년13세24년
18대의종왕현1127년1146년19세24년
19대명종왕호1131년1170년39세27년
20대신종왕탁1144년1197년53세7년
21대희종왕영1181년1204년23세7년
22대강종왕오1152년1211년59세2년
23대고종왕철1192년1213년21세46년
24대원종왕정1219년1259년40세15년
25대충렬왕왕거1236년1274년38세34년
26대충선왕왕장1275년1298년23세5년
27대충숙왕왕만1294년1313년19세24년
28대충혜왕왕정1315년1330년15세7년
29대충목왕왕흔1337년1344년7세4년
30대충정왕왕저1337년1349년12세2년
31대공민왕왕전1330년1351년21세23년
32대우왕왕우1365년1374년9세14년
33대창왕왕창1380년1388년8세1년
34대공양왕왕요1345년1389년44세3년

고려왕조 역대 왕의 업적

1대 왕
묘호/왕명: 태조
이름/휘: 왕건
출생년:877년즉위년: 918년

태조(太祖, 877년 ~ 943년, 재위 : 918년 ~ 943년)는 후삼국 시대 후고구려의 장군이자 고려를 건국한 고려의 초대 왕이다.

처음에는 궁예가 총애하던 장수였으나 궁예의 폭정으로 궁예를 몰아낸후 다른 장수들의 추대를 받아 고려를 건국하게 된다.

건국후 지방 호족들의 견제를 위하여 여러가지 정책을 시행 하였는데 지방 유력 호족과 혼인을 하는 방법을 통하여 29명의 왕비를 얻었다. 그리고 유력한 지방호족들에겐 왕씨 성을 하사하는 사성정책을 동시에 사용했으며 마지막으로 기인제도를 통해 호족들의 아들들을 개경에 머물도록하며 반란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왕건사후 치열한 왕위 쟁탈전으로 이어졌고 이를 예상한 왕건은 훈요십조라는 글을지어 이를 예방하려 하였으나 소용 없었다.

2대 왕
묘호/왕명: 혜종
이름/휘: 왕무
출생년:912년즉위년: 943년

혜종(惠宗, 912년 ~ 945년, 재위: 943년 ~ 945년)은 고려 제2대 왕이다.

다른 왕자들의 극심한 왕권위협으로 매일같이 처소를 옮겨다니며 잠을 청해야 했으며 재위 후 극심한 스트레스로 사망하게 된다.

3대 왕
묘호/왕명: 정종
이름/휘: 왕요
출생년:923년즉위년: 945년

정종(定宗, 923년 ~ 949년, 재위: 945년 ~ 949년)은 고려 제3대 왕이다.

4대 왕
묘호/왕명: 광종
이름/휘: 왕소
출생년:925년즉위년: 949년

광종(光宗, 925년 ~ 975년, 재위: 949년 ~ 975년)은 고려 제4대 왕이다.

고려초기의 개혁군주이다. 첫번째로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억울하게 노비가 된 양민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이를 통해서 사병을 거느리던 지방 호족과 개국 공신들의 힘이 많이 약해지게 되었다. 다음으로 과거제를 도입하여 공신들의 자녀가 관료가 되는 폐습을 줄일 수 있었다.

광종 후기에는 자기와 뜻이 다른 신하들을 숙청하는등 공포정치를 어어갔다.

5대 왕
묘호/왕명: 경종
이름/휘: 왕주
출생년:955년즉위년: 975년

경종(景宗, 955년 ~ 981년, 재위: 975년 ~ 981년)은 고려 제5대 왕이다.

6대 왕
묘호/왕명: 성종
이름/휘: 왕치
출생년:960년즉위년: 981년

성종(成宗, 961년 ~ 997년, 재위: 981년 ~ 997년)은 고려 제6대 왕이다.

국자감을 정비하여 관학을 발전시켜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였고, 지방에는 경학박사와 의학박사를 파견하고 향학을 설치하여 유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유교적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서희장군을 파견하여 거란족의 거듭된 침입을 외교로서 해결하려 하였고, 이후 거란족의 침입이 재개되자 격퇴케 하였다.

국가체계의 틀을 잡았다. 중앙정치는 2성6부, 지방관할은 5도양계, 군사제도는 2군6위, 교육제도는 군자감을 두었다.

최승로가 제시한 시무28조를 체댁하여, 백성들에게 부담이 큰 토목공사등을 줄이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등 개혁을 단행하였다.

성종때 거란의 침입이 3번 있었는데 첫번째는 서희의 외교 담판이였으며 이로 인해 북방의 여진을 물리치고 강동6진을 설치하게 되었다. 3번째 거란침입때는 강감찬 장군의 귀주 대첩으로 대승을 거두어 거란족을 물리쳤다.

개경 근처의 벽란도에는 아랍상인들을 비롯한 외국인 상인들이 드나들며 한국을 서구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KOREA(코리아) 라는 한국의 영문명칭도 이때 고려의 명칭이 외국으로 퍼진것이 그 유래라고 한다.

7대 왕
묘호/왕명: 목종
이름/휘: 왕송
출생년:980년즉위년: 1009년

목종(穆宗, 980년 ~ 1009년, 재위 : 997년 ~ 1009년)은 고려 제7대 왕이다.

동서양의 근대 이전 왕실내에서 흔히 볼수 있듯이 목종은 근친혼 풍습이 극에 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목종은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가 모두 태조왕건의 직계 후손인 왕과 왕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부인 선정왕후의 아버지 역시 태조 왕건의 친손자 홍덕원군이였고, 어머니는 광종의 딸 문덕왕후이다.

집권 초기에는 헌애왕후의 섭정으로 정사를 하였고 그의 충복인 강조에 의해 폐위되며 강조에 의해 현종이 왕으로 옹립을 받게 된다.

8대 왕
묘호/왕명: 현종
이름/휘: 왕순
출생년:992년즉위년: 1009년

현종(顯宗, 992년 ~ 1031년, 재위 : 1009년 ~ 1031년)은 고려 제8대 왕이다.

두 차례의 거란침입으로 황폐화된 고려의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였으며 강조의 정변 이후 쇠약해진 왕의 힘을 키우기 위해 지방세력을 규제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중앙집권화를 이끌었고, 성종 이후 폐지된 연등회와 팔관회를 부활시켰다.

고려실록을 재편찬하고, 초조 대장경을 간행하였으며 교종 대사찰인 현화사 건립을 지시하였다. 유교의 진흥에도 힘써 설총과 최치원에게 작위를 수여하고 문묘에 처음으로 모셔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조성도감을 설치하여 23km에 달하는 거대한 나성을 쌓아올렸으며 이는 훗날 조선시대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 수도를 옮길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9대 왕
묘호/왕명: 덕종
이름/휘: 왕흠
출생년:1016년즉위년: 1031년

덕종(德宗, 1016년 ~ 1034년, 재위: 1031년 ~ 1034년)은 고려 제9대 왕이다.

10대 왕
묘호/왕명: 정종
이름/휘: 왕형
출생년:1018년즉위년: 1034년

정종(靖宗) 1018년 ~ 1046년, 재위: 1034년 ~ 1046년)은 고려 제10대 왕이다.

거란의 계속된 위협으로 1037년 압록강 일대에서 거란의 침입을 받자, 강화 회담을 체결하여 한동안 단절되었던 조공을 다시 바치기로 하여 거란과 화친을 맺고, 1038년부터는 거란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1039년는 거란으로부터 책봉교서를 받았다.

5역·5천, 불충, 불효자와 향·부곡 거주자 및 천인인 악공·잡류 들의 자손들의 과거 응시를 금지했고, 장자상속법을 제정하였으며, 광종때 폐지된 노비종모법을 다시 부활하여 노비 여성에게서 태어나는 자녀는 노비가 되도록 했다.

11대 왕
묘호/왕명: 문종
이름/휘: 왕휘
출생년:1019년즉위년: 1046년

문종(文宗, 1019년 ~ 1083년, 재위: 1046년 ~ 1083년)은 고려 제11대 왕이다.

문하시중 최충에게 명하여 율령·서산을 정리하도록 명하였으며, 그의 치세기간 중 이자연과 최충을 통해 문치 정책을 펼쳤다

문종의 4째 아들 대각국사 의천은 문종의 뜻에 따라 11세의 나이에 출가하였다. 당시

당시 고려의 불교는 지방 중심의 선종과 중앙의 교종으로 나뉘어 있었고 교종 또한 왕실의 후원을 받은 화엄종과 귀족 중심의 법상종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의천은 개성 흥왕사에서 교단통합운동을 하며 천태종을 도입하였다. 하지만 의천사망이후 다시 분리 되고 말았다.

문종의 재위 37년간 고려의 문물과 제도는 크게 정비되어 고려의 황금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 유교, 미술, 공예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괄목할 수준을 드러내 문화가 크게 발전되었다.

12대 왕
묘호/왕명: 순종
이름/휘: 왕훈
출생년:1047년즉위년: 1083년

순종(順宗, 1047년 ~ 1083년, 재위: 1083년(3개월))은 고려 제12대 왕이다.

13대 왕
묘호/왕명: 선종
이름/휘: 왕운
출생년:1049년즉위년: 1083년

선종(宣宗, 1049년 ~ 1094년, 재위: 1083년 ~ 1094년)은 고려 제13대 왕이다.

승과를 설치하고 불교를 장려하였으며, 변경을 지키는 사졸들에게 저고리와 바지를 하사하였다.

14대 왕
묘호/왕명: 헌종
이름/휘: 왕욱
출생년:1084년즉위년: 1094년

헌종(獻宗, 1084년 ~ 1097년, 재위: 1094년 ~ 1095년)은 고려 제14대 왕이다.

나이가 어리고 병약하는 이유로 어머니인 사숙태후가 수렴청정하였다.

15대 왕
묘호/왕명: 숙종
이름/휘: 왕옹
출생년:1054년즉위년: 1095년

숙종(肅宗, 1054년 ~ 1105년, 재위: 1095년 ~ 1105년)은 고려 제15대 왕이다.

숙종은 6촌 이내의 혼인을 금지하였고 주전관을 두고 주화를 만들어 통용하게 하였으며 고려의 지형을 본떠서 활구를 주조하였고 이듬해에는 고주법을 제정하여 해동통보를 만들어 문무백관에게 분배하였다.

여진족의 기병에 지속적으로 당하자 기병으로 구성된 신기군, 보병으로 구성된 신보군과 승도들로 구성된 항마군 도합 30만명을 두어 별무반이라 칭하고 여진정벌을 준비하게 하였다.

16대 왕
묘호/왕명: 예종
이름/휘: 왕우
출생년:1079년즉위년: 1105년

예종(睿宗, 1079년 ~ 1122년, 재위: 1105년 ~ 1122년)은 고려 제16대 왕이다.

윤관, 오연총에게 여진 정벌을 단행하여 섬멸하고 이듬해에는 동북 9성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1년 만에 9성을 철폐하고 여진에게 반환하였다.

국학에 학과별 전문강좌인 칠재를 설치하여 관학(官學)의 진흥을 꾀하였고, 혜민국을 설치하여 빈민들의 시약을 담당하게 하였고 이듬해에는 예의상정소를 설치하였다.

17대 왕
묘호/왕명: 인종
이름/휘: 왕구
출생년:1109년즉위년: 1122년

인종(仁宗, 1109년 ~ 1146년, 재위: 1122년 ~ 1146년)은 고려 제17대 왕이다.

이자겸이 인종에게 3명의 딸을 시집 보내며 왕권을 넘보다 실권하게 되자 이자겸의 난을 일으킨다. 척준경등의 힘을 빌어 난을 진압하게 되지만 척준경 역시 귀양을 가게 된다.

묘청의 서경 천도운동을 벌이며 묘청의 난이 일어나지만 김부식에게 진압된다.

김부식으로 하여금 삼국사기의 편찬을 지시해 1145년 출간하였다. 삼국사기는 사마천의 사기와 같이 한 인물의 전기를 서술하는 기전체 형식으로 내용을 전개 해 간다. 김부식은 경주김씨 였기에 주로 신라위주의 내용으로 전개해가며 신라내용에 과장이 많이 있다.

18대 왕
묘호/왕명: 의종
이름/휘: 왕현
출생년:1127년즉위년: 1146년

의종(毅宗, 1127년 ~ 1173년, 재위: 1146년 ~ 1170년)은 고려 제18대 왕이다.

의종 초기에는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으로 실추된 황실의 권위를 회복하여 쇠약해진 황권을 강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무신들을 총애하여 친위군을 강화하려 노력하였으나, 재위 후기에는 음주가무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는중에 무신정변으로 폐위 당한다.

대대로 외척가문이였던 인주 이씨 이자겸이 [십팔자도참설]을 신봉하여 왕씨가 아닌 이씨가 왕이된다는 소문을 퍼트려 왕위 찬탈을 위해 난을 일으키나 실패하게된다.

개혁세력인 묘청의 서경파와 당시 기득권이였던 김부식의 개경파가 서로 대립하였으나 서경파가 패하면서 이 이후로 한국 역사속에 자주독립국으로서의 의식은 약해졌고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대세로 자리잡아갔다.

서경파는 수도를 북쪽인 서경으로 천도룰 주장하였으며 고구려계승의식이 강했으므로 금나라를 공격하여 국가를 강하게 하고자 했다. 반면 개경파는 개경에 그대로 머물기를 원했고 고구려보다 신라 계승의식이 강했으며 금나라에 대한 사대의식이 강했다.

19대 왕
묘호/왕명: 명종
이름/휘: 왕호
출생년:1131년즉위년: 1170년

명종(明宗, 1131년 ~ 1202년, 재위: 1170년 ~ 1197년)은 고려 제19대 왕이다.

무신정권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실권은 무신 정권의 지도자인 정중부에게 있었다. 이를 타계하기위해 군사를 일으켰으나 진압되고 의종은 살해당했다.

집권내내 민란이 일어났다

20대 왕
묘호/왕명: 신종
이름/휘: 왕탁
출생년:1144년즉위년: 1197년

신종(神宗, 1144년 ~ 1204년, 재위: 1197년 ~ 1204년)은 고려의 제20대 왕이다.

무신정권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실권은 최충헌등 무신정권에 있었다. 등창이 심하여 아들에게 왕위를 양위하였다.

집권내내 민란이 일어났다

21대 왕
묘호/왕명: 희종
이름/휘: 왕영
출생년:1181년즉위년: 1204년

희종(熙宗, 1181년 ~ 1237년, 재위: 1204년 ~ 1211년)은 고려의 제21대 왕이다.

무신정권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재위 기간 최충헌이 실권을 잡았으며,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최충헌에 의해 폐위되었다

집권내내 민란이 일어났다

22대 왕
묘호/왕명: 강종
이름/휘: 왕오
출생년:1152년즉위년: 1211년

강종(康宗, 1152년 ~ 1213년, 재위: 1211년 ~ 1213년)은 고려의 제22대 왕이다.

무신정권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재위 기간 동안 최충헌이 실권을 맡았다.

집권내내 민란이 일어났다

23대 왕
묘호/왕명: 고종
이름/휘: 왕철
출생년:1192년즉위년: 1213년

고종(高宗, 1192년 ~ 1259년, 재위: 1213년 ~ 1259년)은 고려의 제23대 왕이다.

무신정권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재위 기간 동안 최충헌등 최씨일가가 실권을 맡았다.

징기스칸이 아시아 대륙을 평정한 후 몽고의 고려 침략이 시작되어 수도였던 개경을 버리고 강화도로 천도하였다. 수차례에 걸친 몽고와의 전쟁으로 전국토가 황폐화되었고,집권내내 민란이 일어났다

1차 몽고의 침입후 무신정권의 권유로 강화도로 천도하고 장기 항전의 모습을 보였고, 또다시 쳐들어온 몽고군이 임금이 강화도로 피신한것을 보고 강화도는 뒤로하고 고려 전 국토를 장기간 유린하였다. 이때 황룡사 9층 목탑등 많은 문화재들이 소실되었지만, 불교의 힘으로 국난을 이기고자 해인사에 8만대장경을 제작하게 되었다.

최씨 무신정권이 막을 내리고 고종은 세자를 몽고에 보내게 돤다. 고려의 태자는 몽골에 가서 둘로나뉜 황제 쟁탈전에서 쿠빌라이의 편에 서게 되는데 쿠빌라이가 승리하면서 고려는 고려의 고유 풍속을 고치 않아도 되는 불개토풍의 혜택을 받게 된다.

24대 왕
묘호/왕명: 원종
이름/휘: 왕정
출생년:1219년즉위년: 1259년

원종(元宗, 1219년 ~ 1274년, 재위: 1259년 ~ 1274년)은 고려의 제24대 왕이다.

원나라 쿠빌라이에게 투항함으로서 몽고는 고려의 풍속을 고치도록 강요하지 않겠다라는 불개토풍을 약속받았으며 이를 세조구제라고 한다. 대신 이때부터 고려의 지위는 강등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원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원종 이후의 왕들은 묘호를 사용할 수 없으며 시호의 앞 글자에 원나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충성 충(忠)’자를 넣고, 황제가 본인을 지칭하는 ‘짐’ 은 ‘과인’ 으로, 황제를 부르는 칭호인 ‘폐하’는 ‘전하’로, 황제의 뒤를 이을 아들인 ‘태자’는 ‘세자’로, 황제의 명령을 담은 글인 ‘성지’는 ‘왕지’로 명칭이 격하되었다. 이후 충렬왕 때 각종 관청과 관직의 명칭들도 모두 격하되었다.

원종 즉위 후에도 김준에의한 무신정권이 지속되었지만 김준을 제거하고 개경으로 다시 환도를 하게 된다. 이때 환도와 원에 반대한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지만 여몽연합군에 의해 진압된다.

원간섭기때부터 친원파가 득세를 하게 되었는데 이를 권문세족이라고 한다.

25대 왕
묘호/왕명: 충렬왕
이름/휘: 왕거
출생년:1236년즉위년: 1274년

충렬왕(忠烈王, 1236년 ~ 1308년, 재위: 1274년 ~ 1298년, 복위 : 1298년 ~ 1308년)은 고려 제25대 왕이다.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의 쿠빌라이의 딸과 결혼하여 원나라의 부마(사위)국이 되었으며, 충렬왕 이후의 국왕들은 원나라 황족의 딸을 정비 또는 후궁으로 맞이하였다.

충렬은 원나라에서 보낸 시호이다. 충렬왕이 원나라 황제의 부마가 되었으므로 원나라에서 온 칙사나 장군과 지위가 같다고 보고 국왕이 이들과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상대하는 것을 중지하고, 높은 임금의 자리에 앉아서 이들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고려, 신라등 삼국시대에 제주도에 말을 키웠다는 역사적 사료는 있지만, 충렬왕때 원나라의 병마를 사육하기 위한 제주도에 목마장이 설치되었고, 이때부터 제주마를 체계적으로 키우게 되었다.

1281년 승려였던 일연이 삼국 유사를 편찬한다. 정사가 아니기에 신화, 전설, 민간 설화등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으며 사건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해가는 기사본말체를 이용해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26대 왕
묘호/왕명: 충선왕
이름/휘: 왕장
출생년:1275년즉위년: 1298년

충선왕(忠宣王, 1275년 ~ 1325년, 재위 : 1298년, 복위 : 1308년 ~ 1313년)은 고려 제26대 왕이다.

권문세족이 인사권을 독점하며 폐단을 일삼던 정방을 폐지하고 사림원을 설치하였다.

각염법을 제정하고 의염창을 설치하여 소금의 전매제도를 실시하였다. 재위 후반에는 아들 충숙왕에게 양위하고 원나라에 머물며 만권당을 세워 독서와 학문 연구, 서화 그리기 등에 전념하기도 했다.

충선왕은 고려 왕실내에서 성행하던 동성간의 혼인을 금지하였으며,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15개의 가문을 선정하여 왕족과 귀족의 혼인을 것을 명령하여 왕씨간의 족내혼을 금지했다. 이로써 왕족들은 특정 가문 출신의 자녀와 통혼하게 되었는데, 이 가문들은 장차 권문세족으로 성장하게 된다.

27대 왕
묘호/왕명: 충숙왕
이름/휘: 왕만
출생년:1294년즉위년: 1313년

충숙왕(忠肅王, 1294년 ~ 1339년, 재위: 1313년 ~ 1330년, 복위 : 1332년 ~ 1339년)은 고려 제27대 왕이다.

28대 왕
묘호/왕명: 충혜왕
이름/휘: 왕정
출생년:1315년즉위년: 1330년

충혜왕(忠惠王, 1315년 ~ 1344년, 재위 : 1330년 ~ 1332년, 복위 : 1339년 ~ 1343년)은 고려 제28대 왕이다.

즉위 후에 사치와 향락, 사냥을 일삼았으며, 왕실가족들을 여럿 성적으로 폭행을 가했다.

29대 왕
묘호/왕명: 충목왕
이름/휘: 왕흔
출생년:1337년즉위년: 1344년

충목왕(忠穆王, 1337년 ~ 1348년, 재위: 1344년~1348년)은 고려 제29대 왕이다.

권세가들에게 빼앗겼던 땅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며, 녹과전의 폐단을 시정하였다. 기근이 들었을 때 진제도감을 설치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

30대 왕
묘호/왕명: 충정왕
이름/휘: 왕저
출생년:1337년즉위년: 1349년

충정왕(忠定王, 1338년 ~ 1352년, 재위 : 1349년 ~ 1351년)은 고려 제30대 왕이다.

31대 왕
묘호/왕명: 공민왕
이름/휘: 왕전
출생년:1330년즉위년: 1351년

공민왕(恭愍王, 1330년 ~ 1374년, 재위: 1351년 ~ 1374년)은 고려 제31대 왕이다.

무신 정권을 혁파하고 배원정책을 추진하여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개혁을 추진하였다. 신돈 등을 등용하여 권문세족과 부패 관료와 외척을 정리하고 신진사대부를 중용하는 등의 노력하였나 결국 실패하였다. 하지만 이때 성장한 신진 사대부는 훗날 조선을 건국하는데 크게 기여를 하게 된다.

신돈은 현실감 있는 승려였기에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정확히 꿰고 있었고 불교뿐 아니라 유교적 지식을 섭렵하고 있었기에 고려를 개혁할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더욱 공민왕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렇게 신돈은 공민왕의 최 측근이 되어 개혁을 단행하게 되었다. 그는 먼저 부패한 주요 권문세족들을 몰아내고, 그들에게 억울하게 빼앗긴 백성들의 토지를 돌려주고, 노비를 면천시켜주는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했다. 또 과거 시험과 조세 제도도 개혁했다. 그리고 성종 때의 국자감의 이름이 변했다가 유명무실해진 성균관을 다시 부활시켜 신진사대부들을 양성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신돈과 공민왕의 개혁은 비록 실패 하였으나 이때 성장한 이성개등 신진 사대부들이 나중에 조선을 건국하게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32대 왕
묘호/왕명: 우왕
이름/휘: 왕우
출생년:1365년즉위년: 1374년

우왕(禑王, 1365년 ~ 1389년, 재위: 1374년 ~ 1388년)은 고려 제32대 왕이다.

왜의 약탈로 일반 백성들의 피해가 극심하였으며, 신진사대부가 성장하여 권문세족과 대립하였다. 명나라의 요동을 공격하기 위해 요동 정벌을 단행하였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 의해 폐위되된후 처형되었다.

이성계의 사불가론 1.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싸우는것은 상책이 되지 못하고, 2.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것은 불합리하며, 3. 요동을 공격하는 틈을타서 왜구가 창궐할 수 있고, 4. 당시 장마철이므로 전투하기에 불편하고 전염병으로 군사들이 희생될 우려가 크다.

33대 왕
묘호/왕명: 창왕
이름/휘: 왕창
출생년:1380년즉위년: 1388년

창왕(昌王, 1380년 ~ 1389년, 재위: 1388년)은 고려의 제33대 왕이다.

34대 왕
묘호/왕명: 공양왕
이름/휘: 왕요
출생년:1345년즉위년: 1389년

공양왕(恭讓王, 1345년 ~ 1394년, 재위: 1389년 ~ 1392년)은 고려의 제34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
  • 고려사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