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조 왕 순서

신라왕조 왕 순서

신라왕조 왕 순서와 계보

신라는 BC57년에 건국되어 935년까지 약 992년간 존속한 왕조로, 한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입니다. 초기에는 박·석·김 3성이 교대로 왕위를 이었으며, 17대 내물 마립간 이후부터는 김씨가 왕위를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신라는 골품제라는 독특한 신분제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성골과 진골의 구분이 왕위 계승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역대 왕 상세 정보

1대 거서간 (혁거세) — BC57년 즉위

혁거세 거서간(東明聖王, 기원전 69년 ~ 4년, 재위: 기원전 57년 ~ 4년)은 김씨, 석씨, 박씨가 중심이 되는 연합왕국의 초대 거서간(왕)이다.

나정(蘿井)에서 태어난 알에서 나왔다는 건국 신화가 전해지며, 6부 촌장들이 추대하여 서라벌(徐羅伐)의 왕이 되었다.

알영 혜거세와 함께 신라의 기초를 닦았으며, 재위 62년이라는 긴 통치기간을 기록하고 있다.

2대 차차웅 (남해) — 4년 즉위

남해 차차웅(南解次次雄, 기원전 50년 ~ 24년, 재위: 4년 ~ 24년)은 신라 2대 차차웅(왕)이다.

차차웅이란 말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의 의미이다.

3대 이사금 (유리) — 24년 즉위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 ? ~ 57년, 재위: 24년 ~ 57년)은 신라의 제3대 이사금(왕)이다.

이시금이란 칭호는 치아수가 많은 사람 또는 연장자 라는 의미이다.

4대 이사금 (탈해) — 57년 즉위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 ? ~ 80년, 재위: 57년 ~ 80년)은 신라 이사금(왕)이다

석씨 성의 시조로, 상자(箱子)에 담겨 바다에서 떠내려온 탈해 신화가 전해진다. 국정 인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왕위에 올랐다.

호공(瓠公)이라는 아달한 간귀로 도둑을 발견해냈다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해지며, 이사금(泥師今)이라는 칭호는 이빨 수가 많은 사람이란 뜻이다.

5대 이사금 (파사) — 80년 즉위

파사 이사금(婆娑尼師今, ? ~ 112년 10월, 재위: 80년 ~ 112년)은 신라의 제5대 국왕이다

7대 이사금 (일성) — 134년 즉위

일성 이사금(逸聖泥師今, ? ~ 154년, 재위: 134년 ~ 154년)은 신라의 제7대 이사금(왕)이다

6대 이사금 (지마) — 112년 즉위

지마 이사금(祗摩泥師今, ? ~ 134년, 재위: 112년 ~ 134년)은 신라의 제6대 이사금(왕)이다.

8대 이사금 (아달라) — 154년 즉위

아달라 이사금(阿達羅泥師今, ? ~ 184년, 재위: 154년 ~ 184년)은 신라의 제8대 이사금(왕)이다.

9대 이사금 (벌휴) — 184년 즉위

벌휴 이사금(伐休泥師今, ? ~ 196년, 재위: 184년 ~ 196년)은 신라의 제9대 이사금(왕)이다.

11대 이사금 (조분) — 230년 즉위

조분 이사금(助賁泥師今, ? ~ 247년, 재위: 230년 ~ 247년)은 신라의 제11대 이사금(왕)이다.

12대 이사금 (첨해) — 247년 즉위

첨해 이사금(沾解泥師今, ? ~ 261년, 재위 247년 ~ 261년)은 신라의 12대 이사금(왕)이다.

10대 이사금 (내해) — 196년 즉위

내해 이사금(奈解泥師今, ? ~ 230년, 재위: 196년 ~ 230년)은 신라의 제10대 이사금(왕)이다.

14대 이사금 (유례) — 284년 즉위

유례 이사금(儒禮泥師今, ? ~ 298년, 재위: 284년 ~ 298년)은 신라의 14대 이사금(왕)이다.

17대 마립간 (내물) — 356년 즉위

내물 마립간(奈勿麻立干, ? ~ 402년, 재위: 356년 ~ 402년)은 신라의 17대 마립간(왕)이다.

내물 마립간 때부터 신라는 김씨가 왕위를 이어가는 고대국가적인 면모를 갖추게 된다. 그 계기는 왜구의 침략에 대해 신라가 고구려에 원조 요청을 하게 되었고 원조로 참전한 고구려에서 왕위를 돌려가는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그때부터 김씨 단독으로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는 설이다.

15대 이사금 (기림) — 298년 즉위

기림 이사금(基臨泥師今, ? ~ 310년, 재위; 298년 ~ 310년)은 신라의 15대 이사금(왕)이다.

16대 이사금 (흘해) — 310년 즉위

흘해 이사금(訖解泥師今, ? ~ 356년, 재위: 310년 ~ 356년)은 신라의 16대 이사금(왕)이다

18대 마립간 (실성) — 402년 즉위

실성 마립간(實聖麻立干, ? ~ 417년, 재위 402년 ~ 417년)은 신라의 제18대 마립간(왕)이다.

19대 마립간 (눌지) — 417년 즉위

눌지 마립간(訥祗麻立干, ? ~ 458년, 재위: 417년 ~ 458년)은 신라의 제19대 마립간(왕)이다.

실성이사금에게 인질로 고구려와 왜에 보내졌다가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나제동맹(羅濟同盟)을 결성하여 고구려에 대항하는 외교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마립간(麻立干)이라는 칭호는 대수장(大首長) 또는 큰 울타리라는 뜻으로, 이 시기부터 왕권이 광장되었음을 보여준다.

20대 마립간 (자비) — 458년 즉위

자비 마립간(慈悲麻立干, ? ~ 479년, 재위: 458년 ~ 479년)은 신라의 제20대 마립간(왕)이다.

21대 마립간 (소지) — 479년 즉위

소지 마립간(炤知麻立干, ? ~ 500년, 재위; 479년 ~ 500년)은 신라의 제21대 마립간(왕)이다.

22대 지증왕 (지대로) — 500년 즉위

지증왕(智證王, ? ~ 514년, 재위: 500년 ~ 514년)은 신라의 제22대 왕이다.

국호를 신라라 정하고, 임금을 지칭하는 명칭도 현대화 하여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도록 했다. 순장법을 폐지하고 농업을 장려하였으며 신라 전성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때 이사부는 현재 울릉도인 우산국을 정벌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23대 법흥왕 (원종) — 514년 즉위

법흥왕(法興王, ? ~ 540년 7월, 재위: 514년 ~ 540년)은 신라의 제23대 왕이다.

율렬을 반포하며 법치 국가로서 발전하였으며 병부를 설치하여 국가 조직으로서의 군병을 양성토록 하였고 관리들의 관직에 따라 색을 부여하여 차츰 중앙 집권 국가의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금관가야를 병합하였으며 지방 귀족들을 약화 시키기위해 불교를 공인하였다.

24대 진흥왕 (삼맥종) — 540년 즉위

진흥왕(眞興王, 534년 ~ 576년, 재위: 540년 ~ 576년)은 신라의 제24대 왕이자 신라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왕이다.

나제동맹을 이용해 함께 고구려를 공격한 후 그 여세로 백제까지 공격하여 한강유역을 차자하며 신라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배신을 당한 백제 성왕은 딸을 진흥왕에 시집보내며 뒤로는 전쟁준비를 하였고 전열을 재 정비한 백제는 신라와의 관산성 전투에서 대패를 하고 만다. 이때 성왕은 목이 잘리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진흥왕은 대가야를 병합하고 북쪽으로도 고구려를 공격해 영토를 늘려 삼국시대의 최고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정복지에 진흥왕 순수비를 세웠다. 창녕비, 단양적성비, 북한산비, 황초령비, 마운령비

한국 역사상 최대 사찰로 여겨지는 황룡사도 이때 건립 하였으며 젊은 인재 양성소라고 불리우는 화랑도 이때 설립되었다 한다.

25대 진지왕 (사륜) — 576년 즉위

진지왕(眞智王, ? ~ 579년, 재위: 576년 ~ 579년)은 신라의 제25대 왕이다

26대 진평왕 (백정) — 579년 즉위

진평왕(眞平王, 567년 ~ 632년, 재위: 579년 ~ 632년)은 신라의 제26대 왕이다.

재위 53년으로 신라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왕 중 하나이다. 수나라·당나라와 적극적인 외교 관계를 맺어 고구려·백제의 압박에 대응하였다.

아들이 없어 딸인 덕만(선덕여왕)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위화부(位和府)를 설치하는 등 행정 제도를 정비하였다.

27대 선덕여왕 (덕만) — 632년 즉위

선덕여왕(善德女王, ? ~ 647년, 재위: 632년 ~ 647년)은 신라 제27대 여왕자 한국사 최초의 여왕이기도 하다.

신라사회는 골품제 사회로 계급이 나뉘어진 사회였다. 원래는 성골출신만이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으나 진평왕대이 죽자 더이상 성골출신 남자가 없어 화백회의에서 내린결론이 여왕이 왕이 되는 것이였다.

선덕여왕의 지시로 천문을 관측하는 첨성대와 불교의 힘을 이용해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황룔사에 9층 목탑을 지었다고 한다.

28대 진덕여왕 (승만) — 647년 즉위

진덕여왕(眞德女王, ? ~ 654년, 재위: 647년 ~ 654년)은 신라 제28대 여왕이다.

마지막 성골 출신 왕으로, 태평가(太平歌)를 지어 당 고종에게 바치며 당나라와의 외교에 힘썼다. 당의 연호와 관복 제도를 도입하였다.

진덕여왕 사후 성골이 단절되며 진골 출신 김춘추(무열왕)가 왕위에 오르는 신라 중대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29대 무열왕 (춘추) — 654년 즉위

무열왕(武烈王, 603년 ~ 661년, 재위: 654년 ~ 661년)은 신라 제29대 왕이다.

진덕여왕의 조카이며 최초의 진골 출신으로 왕이된 군주로 골품제라는 신라의 특수한 사정상 즉위 직전까지 태자 및 후계자가 아니었다. 마지막 성골인 진덕여왕이 승하한 당과의 외교술과 백제를 병합시킨 공로로 후 화백회의의 합의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 왕위에 추대되기 전부터 외교관, 정치가로 활발하게 활동해서 신라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권을 자랑했던 신라 중대 왕실의 초석을 다진 왕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신라 중대라고 표현한다.

능숙한 외교술과 임기응변을 통해 고립되었던 신라에게 있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삼국통일의 판을 짠 명군이며 이는 일본사기에도 기록이 있을정도로 그의 높은 외교술은 해외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당나라와의 동맹으로 고구려의 대부분의 땅을 당나라에 넘긴 왕이라는 오명도 함께 가지고 있다.

부산 영도의 태종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태종무열왕이 활을 쏘기 위하여 이곳을 찾았다는 사실에서 유래된다.

30대 문무왕 (법민) — 661년 즉위

문무왕(文武王, 626년 ~ 681년, 재위: 661년 ~ 681년)은 신라 제30대 왕이다.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의 내분으로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게 되지만, 당나라는 고구려땅에 안동도호부, 백제땅에 웅진도독부, 신라땅에 계림도독부 등을 설치하여 신라를 정복국 취급하였으며 7년간의 나당전쟁 끝에 당나라를 물리치며 고구려의 대부분의 땅을 상실한채 676년 형식적으로 삼국을 통일하게 된다.

31대 신문왕 (정명) — 681년 즉위

신문왕(神文王, ? ~ 692년, 재위: 681년 ~ 692년)은 신라 제31대 왕이다.

국가 주도 인재양성소인 국학의 설치, 지방귀족들의 녹읍의 폐지, 또한 9주 5소경이라는 지방 행정구역을 두어 관리하는 등 중앙권력체제를 갖춰나간다(9주 : 한주, 삭주, 명주, 웅주, 상주, 전주, 강주, 양주, 무주)

이때 대조영이 고구려인과 말갈등 다른 소수민족과 함께 발해를 건국하게 된다.

녹읍이란 신하에게 땅과 그땅에서 나는 모든 자원 그리고 노동력의 소유권까지 지급하는 제도이다. 때로는 이 노동력을 사병화 하여 왕권의 큰 위협이 되기도 하였다.

32대 효소왕 (이홍) — 692년 즉위

효소왕(孝昭王, 687년 ~ 702년, 재위: 692년 ~ 702년)은 신라 제32대 왕이다.

33대 성덕왕 (흥광) — 702년 즉위

성덕왕(聖德王, ? ~ 737년, 재위: 702년 ~ 737년)은 신라 제33대 왕이다.

백성들에게 정전을 지급하는등 신라 최고의 태평성대 였다.

34대 효성왕 (승경) — 737년 즉위

효성왕(孝成王, ? ~ 742년, 재위: 737년 ~ 742년)은 신라 제34대 왕이다.

35대 경덕왕 (헌영) — 742년 즉위

경덕왕(景德王, ? ~ 765년, 재위: 742년 ~ 765년)은 신라 제35대 왕이다.

왕권강화를 위해 중앙정권의 제도의 명칭과 여러 관할지역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어 불렀지만 나중에 실패하여 녹읍이 부활하게 된다.

세계문화 유산으로도 알려진 불국사가 김대성에 의해 지어진다.

38대 원성왕 (경신) — 261년 즉위

원성왕(元聖王, ? ~ 798년, 재위: 785년 ~ 798년)은 신라 제38대 왕이다.

독서삼품과를 실시하며 능력으로 관료를 선발하게 된다.

36대 혜공왕 (건운) — 765년 즉위

혜공왕(惠恭王, 758년 ~ 780년, 재위: 765년 ~ 780년)은 신라 제36대 왕이다.

혜공왕의 죽음고 함께 김씨 무열왕 계열의 신라 중대가 끝이난다.

37대 선덕왕 (양상) — 780년 즉위

선덕왕(宣德王, ? ~ 785년, 재위: 780년 ~ 785년)은 신라의 제37대 왕이다.

어머니는 성덕왕의 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아버지는 내물마립간의 9대손이라고만 전해지고 있다. 이때부터 무열왕 계열 김씨의 집권이 끝이나고, 17대 내물 마립간 계열이 집권하게 되며 왕위 쟁탈전의 과열로 신라의 쇠락의 길이 열리게 된다.

39대 소성왕 (준옹) — 799년 즉위

소성왕(昭聖王, ? ~ 800년, 재위: 799년 ~ 800년)은 신라 제39대 왕이다.

41대 헌덕왕 (언승) — 809년 즉위

헌덕왕(憲德王, ? ~ 826년, 재위: 809년 ~ 826년)은 신라 제41대 왕이다.

김헌창의 난이 발발해 진압이 되지만 이때부터 지방호족을 더이상 통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42대 흥덕왕 (수종) — 826년 즉위

흥덕왕(興德王, 777년 ~ 836년, 재위 : 826년 ~ 836년)은 신라 제42대 왕이다.

사치를 금지하는 복식 금령을 내려 골품에 따른 사치 규제를 시행하였다. 장보고에게 청해진 설치를 허락하여 해상 무역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당나라에서 차(茶)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게 하여 한국 차 문화의 시초가 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40대 애장왕 (청명) — 800년 즉위

애장왕(哀莊王, 788년 ~ 809년, 재위: 800년 ~ 809년)은 신라 제40대 왕이다.

44대 민애왕 (명) — 838년 즉위

민애왕(閔哀王, 817년 ~ 839년, 재위: 838년 ~ 839년)은 신라 제44대 왕이다.

45대 신무왕 (우징) — 839년 즉위

신무왕(神武王, ? ~ 839년, 재위 : 839년 ~ 839년)은 신라 제45대 국왕이다.

47대 헌안왕 (의정) — 857년 즉위

헌안왕(憲安王, ? ~ 861년, 재위 : 857년 ~ 861년)은 신라의 제47대 왕이다.

41대 희강왕 (제륭) — 836년 즉위

희강왕(僖康王, ? ~ 838년, 재위: 836년 ~ 838년)은 신라 제43대 왕이다.

46대 문성왕 (경응) — 839년 즉위

문성왕(文聖王, ? ~ 857년, 재위: 839년 ~ 857년)은 신라 제46대 왕이다.

지방 호족중 대표적인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며 동아시아의 해상무역을 바탕으로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며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이때 더이상 호족을 통제 할 수 없었던 터라 장보고는 해상왕이라고 불리게 된다.

48대 경문왕 (응렴) — 861년 즉위

경문왕(景文王, ? ~ 875년, 재위: 861년 ~ 875년)은 신라 제48대 왕이다.

헌안왕의 사위로서 왕위에 올랐다. 당나라와의 외교를 강화하고, 국학(국립교육기관)을 정비하여 유학 교육을 확대하였다.

경문왕 대에는 임해전(臨海殿) 연못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왕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길었다는 「경문왕 귀」 설화가 전해진다.

49대 헌강왕 (정) — 875년 즉위

헌강왕(憲康王, ? ~ 886년, 재위: 875년 ~ 886년)은 신라 제49대 왕이다.

50대 정강왕 (황) — 886년 즉위

정강왕(定康王, ? ~ 887년, 재위: 886년 ~ 887년)은 신라 제50대 왕이다.

51대 진성여왕 (만) — 887년 즉위

진성여왕(眞聖女王, ? ~ 897년, 재위: 887년 ~ 897년)은 신라의 제51대 여왕이며 한국사에서 마지막 여왕이다.

호족은 중앙정부의 말을 듣지 않았으며, 각지에서 민란과 군웅이 할거하는등 후 삼국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52대 효공왕 (요) — 897년 즉위

효공왕(孝恭王, 885년 ~ 912년, 재위: 897년 ~ 912년)은 신라 제52대 왕이다.

신라 하대 마지막 김씨 왕으로, 후백제 견훤과 후고구려 궁예가 세력을 확장하며 후삼국시대가 본격화되었다. 왕권은 유명무실해져 수도 경주 일대만을 통치하는 수준으로 쇠락하였다.

53대 신덕왕 (경휘) — 912년 즉위

신덕왕(神德王, ? ~ 917년, 재위: 912년 ~ 917년)은 신라 제53대 왕이다.

54대 경명왕 (승영) — 917년 즉위

경명왕(景明王, ? ~ 924년, 재위: 917년 ~ 924년)은 신라 제54대 왕이다.

55대 경애왕 (위응) — 924년 즉위

경애왕(景哀王, ? ~ 927년, 재위: 924년 ~ 927년)은 신라 제55대 왕이다.

견휜의 경주침공으로 자결하게 된다.

56대 경순왕 (부) — 927년 즉위

경순왕(敬順王, 897년 ~ 978년, 재위: 927년 ~ 935년)은 신라 제56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다.

견훤에 의해 옹립되지만 곧 고려 왕건에게 항복하며 신라는 망하게 된다.

이전 글한국사전체 글